장애인 인권 '그들'을 넘어서 '우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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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작성일18-05-08 11:55 조회4,985회 댓글0건본문
몇 년 전 다녀왔던 교환학생 생활을 되돌아볼 때 가장 인상적이었던 순간을 꼽으라면 항상 생각나는 것이 있다. 동물원으로 소풍을 갔을 때였는데, 우연히 한 고등학교의 견학 날과 겹쳐 수십명의 고등학생들과 함께 동물원을 돌아다녔다. 그 고등학생 무리 중 휠체어에 탄 채 다른 친구들과 즐겁게 얘기하며 함께 어울리던 한 소년이 눈에 띄었다. 그는 몸이 불편해 보였는데, 그도 그의 친구들도 이 사실은 전혀 신경 쓰지 않고 한 친구가 뒤에서 휠체어를 밀며 다른 고등학생들과 같이 즐거운 표정으로 동물원을 돌아다녔다.
신기하고 부러운 모습이었다. 내 학창시절 만났던 몸이 불편한 친구들을 생각해 보면 학교를 매일 나오지 못했고, 특히 그런 견학 날은 함께하지 못했었다. 우리가 배우는 교과서에는 차이에 상관없이 모두가 평등해야 한다는 내용이 곳곳에 실려 있었지만, 이는 이미 다 아는 재미없는 교훈 정도로 취급되며 시험날이 다가와서야 간신히 언급되고 기억되었다가 사라지는 때가 대부분이었던 것 같다.
인권이라는 말이 조금 더 보편화된 오늘날에도 상황은 전혀 나아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장애인 인권은 존중 받지 못하는 것을 넘어서 빈번히 학대에 이르고 있다. 지난 5월 26일 한 미용실 업주가 뇌병변 장애인 이모(35)씨에게 머리염색으로 52만원을 청구해 논란이 일었던 사건이 대표적이다. 해당 업주는 장애인의 사회적, 개인적 취약성을 악용하여 일반적인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저품질의 서비스를 제공한 이후 일방적으로 고액 요금을 통보했다. 결국 경찰이 부당금액을 청구한 미용실 업주를 입건하였지만 실제 처벌로 이어진 것은 드문일이다.
2014년에는 염전에 감금되어 폭행과 강제노역에 시달리던 장애인 2명이 탈출하면서 실상이 알려진 일명 '염전노예' 사건이 있었다.
염전 업주들은 지적 능력이 떨어지는 노동자를 정당한 임금을 지불하지 않은 채 수년간 착취하고 상습 폭행한 혐의로 기소되었다.
그러나 최근 이루어진 항소심에서는 염전에서의 위법행위가 관행적이며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사법 처리된 염전 업주들이 대부분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풀려나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사회적 공분을 샀다.
이처럼 여전히 사회적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장애인 인권에 있어 가장 시급한 문제는 제도적 소외이다. 장애인 인권보호를 위한 장애인차별금지법, 장애인복지법 등이 존재하지만, 이를 통해 장애인 학대범죄를 해결하는 데는 어려움이 크다는 지적이 있다.
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범죄의 경우 피해자가 도움을 요청하기 전까지 파악하기가 어렵고 학대로 밝혀지더라도 새로운 시설로 보내지는 것이 대부분이어서 상황의 근본적인 변화가 어려운 상황인데, 기존의 법이 이러한 특수성을 제대로 고려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염전노예’ 사건에서도 피해자 중 많은 수가 다시 염전으로 돌아가거나 노숙 생활을 하고 있는 것에서 이러한 문제점은 여실히 드러난다.
다른 한편으로는 장애인을 향한 우리의 삐뚤어진 인식이 장애인 인권이 존중 받는 데에 있어 큰 장애물이 되고 있다.
머리염색으로 장애인에게 52만원을 청구한 미용실 업주가 수사를 위해 찾아온 경찰에게 '쟤 (피해자인 장애인을 지칭) 말을 믿느냐'고
대답한 것에서 상징적으로 드러나는 것처럼 우리 사회 기저에는 장애인에 대한 불신의 당연함, 차별적 대우의 당연함이 자리잡고 있다.
장애인 인권이 존중되기 위해서는 제도적 변화와 우리의 인식의 변화가 함께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범죄의 특수성을 인정하고 이를 제도적으로 반영해야 한다. 이와 함께 장애인이 ‘그들’이 아닌 ‘우리’임을 인식해 나아가야 한다.
이러한 한걸음 한걸음이 모여 결국에는 우리 사회에서도 모두가 차이에 상관없이 함께 나아가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글쓴이 이지원 님은 국가인권위원회 시민기자입니다.
[출처] 장애인 인권, ‘그들’을 넘어서 ‘우리’로|작성자 국가인권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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